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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松庵(송암)류관(柳灌)묘역 안내

송암 류관(松庵 柳灌)묘소 찾아오는 길 안내

송암 류관(松庵 柳灌)묘·신도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56(칠오와동주유소) 뒤

  류관[柳灌, 성종 15년(1484)∼명종 즉위년(1545)], 자는 관지(灌之), 호는 송암(松庵),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문화, 증조부는 류상영(柳尙榮), 조부는 류주(柳霔), 아버지는 류정수(柳廷秀), 외조부는 박윤손(朴潤孫), 처부는 민계증(閔季曾)이다.

  중종 2년(150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2년 뒤 정언, 1513년에 지평, 1519년에 승정원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이때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파 대간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에 기묘사화가 발생하였을 때, 그는 사헌부집의로서 조광조 일파가 득세 시에 심히 교만하고 방종하였다고 비난하고, 현량과의 파과와 그 급제자의 파방을 주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광조 일파를 공격하였다. 그 뒤 강원도관찰사·대사간·이조참의 등을 거쳐 1525년 12월에는 특별히 통정대부에 승진하면서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외직에 나갔다. 이어서 예조판서·우참찬·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조판서 재직 시에는 간신인 병조판서 이기(李芑)의 비행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이기의 모함을 받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우찬성·좌찬성에 승진되었고 1541년 평안도관찰사, 그 뒤 인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승진하였다.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원형(尹元衡)·이기(李芑) 등의 모함으로 일어난 을사사화에서 윤임(尹任)·유인숙(柳仁淑) 등과 함께 삼흉(三兇)으로 몰려 종사를 모위하였다는 죄목으로 처벌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절도유배형에 처해져 서천으로 귀양갔지만, 온양에 이르러 사사되었다.

  지금의 서초구 방배3동 신동아아파트 자리에는 조선 영조 때 세워진 문화유씨 4정문(旌門 : 홍문)이 있었는데 이 지역이 도시개발 됨에 따라 1973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선영하로 이전하였다. 4정문은 충(忠)·효(孝)·열녀(烈女)·충비(忠婢)의 정문으로서 충은 조선 중기의 명신 충숙공 류관(柳灌)의 정문이며, 효는 류관의 아들 류광찬(柳光讚), 열녀는 류광찬의 부인 평산신씨(平山申氏), 충비는 류관의 여종 갑(甲)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문이다.

  류관의 묘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56(칠오와동주유소) 뒤로 보이는 곳에 있는데 주유소 좌측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1분 이내로 도착하게 된다.

                                                                                               포럼 편집실 류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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