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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문흥군(류사원)영정과 문흥군공우록


上 : 문흥군(류사원)영정
下 : 문흥군(류사원)공우록

文興君(柳思瑗) 控于錄



柳思援이 1596년에 明軍 지원요청을 위한 奏聞使 鄭期遠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온 기록이다.

수록기간은 1596년 12월 6일에서 1597년 3월 13일까지이며 명에서 돌아온 후 정리하여 啓聞한 것을 1860년에 후손 柳會豊이 다시 필사한 것이다.

유사원의 자는 雲甫며‚ 본관은 文化다. 병조좌랑을 거쳐 함경도 경성에서 군무를 맡고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성천에 가서 세자를 시종하였으며 1593년부터는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6년 주문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명군을 영남지방에 인도하였다. 1604년 請兵의 공로로 선무공신 3등으로 1606년에 진주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본서의 내용을 보면 첫머리에는 명에 왕래하면서 문견한 바를 매일 기록하고 명의 관원들의 글 중에서 왜군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는 일에 관계된 것은 함께 수록하여 使行報告書를만들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있으며 이어 일정별로 제 반 사건과 접한 인물들의 일을 서술하였다.

1597년 2월 4일까지는 왜군의 재공격에 대비하여 明軍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는 조선정부의 요청에 대해 명의 兵部에서는 조선이 전쟁기간 내내 전혀 自救노력을 하지 않고 병력이나 식량 등 모든 것을 명에게만 의지하려 하니 더이상의 지원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2월 5일에서 2월 14일까지는 왜장 加藤淸正이 선박 200여척에 군사를 싣고 長崎에 도착하였다는 정보가 전해지고 병부상서 石星이 정세가 급박하므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명의 태도가 달라져 결국 군사동원을 허락하는 發兵咨文이 발표되기까지 명 조정내부에서 있었던 논쟁과 조선사신들의 병력동원요청문을 싣고 있다.

당시 명은 압록강 부근에 주둔한 3천여 군사를 먼저 동원하고 이어서 浙江省 병사와 은화 38‚400냥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본서의 말미에는 別錄을 붙여 벽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벽‚ 봉화대 등 명의 군사시설과 병장기와 戰馬를 국가에서 지급하고 정예병을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하는 방식 및 군사훈련법에 대해 약술하였다. 정유재란전 朝.明 양국의 입장과 외교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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