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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柳志世 朗惠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도산 류영렬 성균관 남부학당 개당식및 학장취식임식

 

남부학당 개당으로 오부학당을 복설하다                                                                                        
 
2019년 11월 06일 (수) 03:23:54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류영렬 선생은 성균관 남부학당을 개당, 오부학당을 복설해 주목을 받고 있다. 372년 고구려의 태학(太學)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는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건립으로 명실상부한 중세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장정미 기자 haiyap@

조선조 태조는 한양천도 4년 후인 1398년 현재의 서울 명륜동에 현존하는 규모와 위치대로 모든 교육시설을 완공했다. 조선시대 최고교육기관으로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건학이념으로 하여 고급관리 양성과 국민교화의 역할을 수행했던 성균관은 수많은 지성들을 배출함으로써, 민족문화 창달에 공헌했다.

▲ 류영렬 학장

오부학당 복설(復設)의 시대적 의미
성균관은 동부학당·서부학당·중부학당·남부학당·북부학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 원종 2년(1261)에 설립된 동서학당(東西學堂)이 그 시초이며, 그 뒤 점차 유교가 사상계를 지배하게 되자 유학교육의 진흥책으로 개경(開京)의 각 부에 학당을 설립, 오부학당으로 확장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이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여 지방에 향교(鄕校)를 세우고 이에 대한 중앙의 중등교육기관으로 정비하였으나, 북부학당은 끝내 설치되지 못하고 1445년(세종 27)경에 폐지되어 사부학당(四部學堂)으로 남게 되었다. 주자학의 태두였던 정몽주(鄭夢周)가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겸하고 있을 때 개경의 중앙과 동서·남·북에 오부학학당을 세우고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조는 당파 싸움과 수차례의 외세 침략을 겪었는데 특히 한일합방이란 처참한 국난을 당하게 되었다.

일제침략을 거치면서 유교문화의 붕괴와 국탈(國奪) 어탈(語奪) 문화파괴(文化破壞)의 수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국난중에서도 우리는 자주독립을 쟁취해냈고 경재부흥을 이룩,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 신 교육제도들 받아드리며 세계화에 따른 근대 대한민국 국가건설에 힘써 왔다. 그러나 안탑가게도 무분별한 서구문물유입, 다종교시대. 물질만능의식이 팽배 가족주의의 붕괴되고 삼강오륜의 유교문명이 퇴락하여 전통 문화는 점차 문어지고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져 다양한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만연하고 있다. 더불어 잘사는 대동(大同)사회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 채 사랑이 넘치는 오천년 민족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오부학당은 서구문물의 유입과 신교육제도의 발달로 쇠퇴 내지 그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성균관은 오부학당을 다시 세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바로세우고 인성(人性)교육을 통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공부자(孔夫子)의 인(仁)의 정신을 다시 펴 대동세계를 열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성균관장의 남부학당을 금천구에 세우라는 지시에 따라 유림은 주비위원회를 구성하고 2018년.6월부터 도산 류영렬 교수의 지도하에 인성교육을 실시하여 왔으며 지난 10월10일 남부학당 개당식 및 도산 선생의 학장 취임식을 김영근 성균관장, 유성훈 금천구청장을 비롯해 관 내외 귀빈다수가 참석 하에 성대한 행사를 마쳤다.

사회의 발전 위해 노력하는 ‘실천하는 지식인’
한시, 시조, 현대시 등을 두루 구사하는 도산 시인은 금천구 독산3동 문화마을춘진협의회 회장, 전국농협중도매인엽합회 회장, 문화류씨대종회 회장과 성균관한시수련원부원장, 청시회장, 임란공신충의선양회회장 등 여러 단체장을 역임하며 문학활동과 사회봉사를 통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온 인물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도 잘 알려진 도산 선생은 자신이 20년 넘게 거주한 금천구 독산3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심한 끝에 문화마을추진협의회를 결성, 살기 좋고 아름다운 문화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금천구 문화마을추진협의회는 국토해양부 ‘문화마을 가꾸기’ 우수사례에서 전국 2위를 차지할 만큼 우수한 사업모델로 선정됐으며, 서울시의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금천구독산동향토문화사를 정리, 독산동 향토문화사적비와 반유구화역유래비를 금천구 체육공원과 시흥대로변에 건립함으로써 지역 주민이 향토사를 발굴하고 이를 연구해 자발적 의사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모범 사례로 회자된다. 이 과정에서 도산 선생은 직접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 향토사적 등 많은 참고문헌을 토대로 비문을 짓고 디자인하여 주민과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해 입비사업을 완성했다.

8순을 맞은 선생은 자신의 인생기록인 도산전집 6권을 2018년 봄 간행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바 있다. 도산 선생은 “역사는 미래의 어머니이다”라며 “한자나 국한문으로 기록된 우리역사와 문화의 문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창하며 이를 한글화하고 인터넷 화하여 글로벌시대 다문화속에 가치관의 혼돈으로 방황하는 후손들에게 전승하여 올바른 국가관과 삶의 참된 의미를 알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 학자의 책임이다”고 피력했다. NM

▲ 지난 10월10일 남부학당 개당식 및 도산 선생의 학장 취임식을 김영근 성균관장, 유성훈 금천구청장을 비롯해 관 내외 귀빈다수가 참석 하에 성대한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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