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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뇌천처사공(호)묘표 (磊川處士公(灝)墓表) 257


뇌천
처사공(호)묘표

磊川處士公(灝)墓表

 

  뇌천처사(磊川處士) 류공(柳公)의 휘는 호(灝)요, 자(字)는 중원(仲遠)인데 이미 서거(逝去)함에 기암정공(畸菴鄭公)이 그의 갈명(碣銘)을 지어 이르되 『효제(孝悌)로 내 몸을 수칙하니 가도(家道)가 화평하고, 시주(詩酒)로 오만한 기운을 부치니 세정(世情)이 점점 희미하도다. 궁곤에 살고 검약을 지키어 즐거히 주림을 잊으니, 강개(慷慨)하고 분려(奮勵)함이 색사(色辭)에 나타나도다. 이름을 감추고 자취를 숨기고자 나무 사립문을 닫았으니, 영화도 없고 굴욕도 없고 따라서 시비도 없도다. 나무를 심고 꽂을 가꾸어 정원을 꾸미며, 나이 칠순이 되도록 조화의 기틀에 맡기도다, 각건(角巾)과 베옷으로 임천(林泉)에서 소요(逍遙)하나, 아들과 손자는 다 빛나는 구슬이로다. 선지(先志)를 선술(善述)하고 선업을 이어받어 살면서 춘추로 명절의 제사에 방비(芳菲)를 올리도다. 내가 단갈(短碣)에 명을 새기어 선세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서 바른 말이 부끄러움이 없는지라 뉘 감이 조롱하리요?』하였다.   이에 족히 공의 사적이 영원히 전하리니 내 다시 군말할 것이 없으나 그러나 공의 7세손 도표(道杓)가 수백리(數百里)길에 발이 부르트며 찾아와서 글을 청함이 더욱 간절하기에 의에 굳이 사양할 수 없음으로 드디어 두어 줄을 엮어 비의 후면에 각하여 표하도록 한다. 그러나 세대가 이미 멀어서 모상(模象)하는 이가 어둠 속에서 키질하고 절구질 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는지? 대저 시(詩)는 성정(性情)의 자연에서 나오는것 인즉 공의 시를 보고 공의 뜻을 의론하면 거의 그 사실을 알 것이다.   공이 병자로변(丙子虜變) 후에 강개한 의기로 시를 지었으니 이르되 『소문에 노병(虜兵)이 강을 건늘 때 한양(漢陽) (688) 성 밖으로 어가가 옮겼다하니, 슬프다 우리나라가 별다른 장책(長策)이 없어, 화해가 마침내 이루어짐에 열사가 슬퍼한다.』고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시를 외고 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함은 옳지 않다 하였으니 백세하(百歲下)에 공의 이 글을 외우면 가히 그 뜻의 고상함을 상상할 것이다. 슬프도다 가히 아는 이로 더불어 말할 것이요, 가히 알지 못한 이로 더불어 말하지 못하리로다, 대개 공이 숨어 살아 세상을 마치니 세상 사람이 처사(處士)라 불러주고 이 사적(事蹟)이 용성지유일록(龍城誌遺逸錄)에 등재되었으니 세인의 추중한바 이 같더라. 한자가 이르되 『뉘가 크나큰 냇물이 근원(根源)이 없다 할고』하니 공의 가세를 더듬어 보면 충과 의가 또한 유래가 깊도다.   단묘충신(端廟忠臣) 충경공(忠景公)은 공의 오세조(五世祖) 인흡(仁洽)과 재종형제(再從兄弟)가 되고 공의 증조(曾祖) 석헌공(石軒公)은 중종조(中宗朝)에 충암(冲菴) 김문간공(金文簡公)과 눌재(訥齋) 박문간공(朴文簡公) 양현(兩賢)으로 더불어 삼인대(三印坮) 사실에 같이 현저(顯著)하므로 정조조(正祖朝)에 『삼인(三印) 그 대(臺)여 만고에 이그러짐이 없으리라.』는 천포(天褒)가 있었으니 아름답고 성하도다. 공은 가히 선세의 얼을 이어 받았다고 하리로다. 그러나 공이 때를 만나지 못하고 후손이 또한 미약하여 떨치지 못한 것이 어찌 선을 하는 자로 권면(勸勉)함이 되리요? 그러나 세상에서 오래 사는 분을 수하였다 하는데 공의 수가 70(七十)을 지내어 고종명(考終命)하고, 돌아감에 또 갈명(碣銘)을 문장대가(文章大家)에 얻어서 어진 이름이 영구히 전하고 공이 이미 남이 능하기 어려운 바를 이루었으니 또한 무엇이 부족하리요?   공이 문화에 계출(系出)되었으니 고려(高麗) 대승(大丞) 휘 차달(車達)의 후(後)로 휘 공권(公權)은 문간공(文簡公)이며, 휘 택(澤)은 상서좌복사(尙書左僕射)며, 휘 경(璥)은 문정공(文正公)이며, 휘 승(陞)은 정신공(貞愼公)이니 서로 이어 여대(麗代)에 현달(顯達)하였고, 증조(曾祖)의 휘는 옥(沃)이니 홍문전한(弘文典翰)으로 종성부사(鍾城府使)인데 곧 석헌공(石軒公)이요, 조(祖)의 휘는 강수(强首)니 사직(司直)이요, 고(考)의 휘는 홍원(洪源)이니 종사랑(從仕郞)으로 이일재(李一齋) 항(恒)을 사사(師事)하고, 비(妣)는 광주김씨(光州金氏)니 웅섭(熊燮)의 따님이라.   공이 만력(萬曆) 1576 병자(丙子) 정월초9일에 탄생하고 숭정(崇禎) 1646 병술(丙戌) 4월11일에 졸하니 향년이 71이고 유고(遺稿)가 있어 세상에 반포되었으며, 묘(墓)는 담양부(潭陽府) 원효(元曉) 선영하(先塋下) 자좌(子坐)이다.   배(配)는 유인(孺人) 순천김씨(順天金氏)니 복지(復址)의 따님이요 양경공(襄景公) 승주(承霔)의 후손이다. 만력(萬曆) 1574 갑술(甲戌)과 숭정(崇禎) 1633 계유(癸酉)는 그 생졸년(生卒年)이며 공묘(公墓)에 부장(祔葬)하였다. (689)   사남 사녀를 두었는데 남(男)에 동숙(東淑)은 호(號)가 야망당(野望堂)이니 성리학(性理學)에 전심하여 덕행이 세상의 칭후(稱詡)가 많고, 동순(東洵)은 호(號)가 어목(漁牧)이니 진사(進士)요, 동연(東淵)은 호(號)가 남간(南磵)이니 진사(進士)로 양의(兩儀)와 사상도(四象圖)를 저작(著作)하였고 감역(監役)이 제수(除授)되었으나 불취(不就)하였으며 동유(東游)는 호(號)가 호계(虎溪)이니 사마(司馬)하여 중형(仲兄) 남간(南磵)과 연벽(聯璧)하였다. 여(女)에 남원(南原) 양여균(楊汝筠)은 종사랑(從仕郞)이요, 삭녕(朔寧) 최(崔) 온(蘊)은 일(逸)로 승지(承旨)이고, 성주(星州) 현(玄) 적(績)은 진사(進士)요, 순천(順天) 박상순(朴尙純)은 진사(進士)이다. 내외 증현손(曾玄孫)이 많아서 다 기록치 못한다.

숭정사정사중동일

은진송달수찬

 

磊川處士柳公灝墓表

 

磊川處士柳公灝字仲遠旣沒畸菴鄭公銘其碣曰孝悌飭躬家道肥酒賦寄傲世情微居窮守約樂忘飢慷慨奮勵見色辭潛名削跡墐木扉無榮無辱無是非種樹蒔花飾庭墀年迫耆耄聽化機角巾布衿卽丘崎有子若孫當琮璣述志嗣業得因依春秋節祀薦芳菲我銘短碣揚世徽直詞無愧誰敢譏此足以不朽公矣余無容更贅然今公之七世孫道杓累舍重繭請益勤義難固辭遂綴數行俾刻表陰世代旣遠得無近於模象者之暗中箕杵耶夫詩出乎性情之自然則以公之詩論公之志庶乎識其實矣公丙子虜變後慷慨作詩曰楣虜兵渡江時漢陽城外 翠華移可憐東國無長策和字終成烈士悲鄒聖不云乎誦詩讀書而不知其人不可百載之下誦公此詩則可以想見其志尙嗚呼悲夫可與知者道而不可與不知者道也盖公隱居沒世世稱處士而載於龍城誌遺逸錄公之爲人所推重有如是矣韓子云孰川豐而不源論公家世則忠義亦有所自矣 端廟忠臣忠景公於公五世祖爲再從兄弟而公之曾祖石軒公 中宗朝與冲菴金文簡訥齋朴文簡兩賢並著于三印臺事實 正祖朝至有三印其坮萬古不磷之 天褒猗歟盛哉公可謂尙其世類也然公不遇於時而後承亦微而不振何以爲爲善者勸也然生而久於世者謂之壽而公壽過稀年而考終沒又得銘於文章大家令名與之久長公旣致 (687) 人所難能則亦又何憾公系出文化高麗大丞諱車達之後有諱公權文簡公諱澤尙書左僕射諱璥文正公諱陞貞愼公相繼顯於麗代曾祖諱沃弘文典翰外補鍾城卽石軒公祖諱强首司直考諱洪源從仕郞師事李一齋恒妣光州金氏熊燮之女公生于萬曆丙子正月初九日卒于崇禎丙戌四月十一日享年七十一有遺稿墓在潭陽府元曉先塋下子坐配孺人順天金氏復址女襄景公承霔后萬曆甲戌崇禎癸酉其生卒年也窆祔公墓生四男四女男東淑號野望堂專意性理學以德行稱東洵號漁牧進士東淵號南磵進士著兩儀四象圖 朝家除監役不就東游號虎溪司馬與南磵聯璧女南原楊汝筠從仕郞朔寧崔蘊逸承旨星州玄績進士順天朴尙純進士內外曾玄多不記

崇禎四丁巳仲冬日

恩津宋達洙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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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260  칠송공(곤수)묘지 (七松公(鵾壽)墓誌) 268     편집인 2012/11/28  [654]  
259  교관공(승춘)묘지명 (敎官公(承春)墓誌銘) 267     편집인 2012/11/28  [652]  
258  청헌류공주전 (淸軒柳公澍傳) 266     편집인 2012/11/28  [566]  
257  청헌공(주)묘표 (淸軒公(澍)墓表) 265     편집인 2012/11/28  [581]  
256  경기감사제교류공(희량)약사 (京畿監司霽嶠柳公(希亮)略事) 264     편집인 2012/11/28  [659]  
255  참판공(희발)약사 (參判公(希發)略事) 263     편집인 2012/11/28  [511]  
254  판서공(희분)약사 (判書公(希奮)略事) 262     편집인 2012/11/28  [689]  
253  판결사공(희담)약사 (判決事公(希聃)略事) 261     편집인 2012/11/28  [555]  
252  시강원필선오촌류공기문묘갈명 (侍講院弼善梧村柳公起門墓碣銘) 260     편집인 2012/11/28  [521]  
251  필선공(기문)자제묘지 (弼善公(起門)自製墓誌) 259     편집인 2012/11/28  [453]  
250  정암공(습)행장 (靖菴公(隰)行狀) 258     편집인 2012/11/28  [907]  
 뇌천처사공(호)묘표 (磊川處士公(灝)墓表) 257     편집인 2012/11/28  [1035]  
248  충청병사공(성)약사 (忠淸兵使公(星)略事) 256     편집인 2012/11/28  [464]  
247  휴계공(무)약사 (休溪公(懋)略事) 255     편집인 2012/11/28  [752]  
246  예문검열용문공(흠)약사 (藝文檢閱龍門公흠(欽+心)略事) 254     편집인 2012/11/28  [632]  
245  장령공(심)약사 (掌令公(竹+尋)略事) 253     편집인 2012/11/28  [546]  
244  절초당공(훤)묘갈명 (節初堂公(箮)墓碣銘) 252     편집인 2012/11/28  [681]  
243  전라도도사공(효건)묘표 (全羅道都事公(孝健)墓表) 251     편집인 2012/11/28  [614]  
242  낙봉공(충건)삼세효행전 (樂峰公(忠健)三世孝行傳) 250     편집인 2012/11/28  [679]  
241  증승지공(의남)묘표 (贈承旨公(義男)墓表) 249     편집인 2012/11/28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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