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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청헌류공주전 (淸軒柳公澍傳) 266


청헌류공주전

淸軒柳公澍

 

  류(柳) 주(澍)의 자는 응림(應霖)이요, 호는 청헌(淸軒)이니 서산(西山) 자미(自湄)의 5세손이다.   융경(隆慶) 1568 무진(戊辰), 선조(宣祖) 원년생인데 글을 지음에 높게 선발되어 발해(發解)(향시(鄕試))에서 명망이 (708) 있었다.   광해군(光海君) 1613 계축(癸丑)에 국모를 폐위하자는 소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공이 향인들을 거느리고 항소를 올려그 폐모론을 주장하는 자들을 참수(斬首)할 것을 청하였는데 그 상소게 이르기를 『부자간의 친애와 군신간의 의리는 천지 사이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로서 만고에 가히 떨어뜨릴 수 없는 바, 만약 그 도리가 없어진다면 금수일 따름이요 이적일 따름 입니다 . 이에 적신(賊臣), 이위경(李偉卿), 정(鄭) 조(造), 윤(尹), 인(訒) 등이 그 패악(悖惡)을 방자하게 저지르고 흉설(兇說)을 억지로 불여 반드시 국모를 폐하기 위하여 자전(慈殿)을 헤아리지 못할 곳에 빠뜨리고 우리 임금님을 과실 있는 곳에 들여 넣고자 어느 책 가운데서 그 주장에 유리한 말을 빼서 모으고 헐뜯어 욕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자전을 욕하는 것이 아니면 전하를 욕하는 것이요, 전하를 욕하는 것이 아니면 온 나라를 들어 금수의 무리로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다만 정(鄭) 조(造), 윤(尹) 인(訒) 등을 말한 것이 과격하다 하시는데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정(鄭) 조(造), 윤(尹) 인(訒)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찌 저 삼적(三賊)의 머리를 베어 자전을 위로하고 신민(臣民)들에 사과하며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지 않으십니까? 죄악이 환히 드러나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주살(誅殺)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전하께서는 그릇되게 그들을 비호하고 계시니 신 등의 의혹이 더욱 불어나고 있으며, 생각을 의논하고 말로 질책하는 신하들은 저들의 흉봉이 닿을까 두려워 감히 그들을 치죄할 것을 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삼사(三司)는 모두 정(鄭) 조(造)의 무리들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바른 언론이 분노로 격동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 유독 이 삼적을 아끼어 윤기의 중대함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종사의 위태로움을 근심하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상소가 울라감에 광해군(光海君)이 크게 노하여 공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구호(救護)하는 이가 있어 다만 10년 동안 금고(禁錮)의 명이 내리었다. 이는 그 가록(家錄)이 이와 같은 바, 수암(遂菴) 권문순공(權文純公)(권상하(權尙夏))이 이를 취하여 묘표를 지었으니 가히 백세토록 전하리라.   공의 집이 본래 부유하여 마을 이웃에서 그 곡식을 빌려 먹은 사람이 많았는데 그 채권문서(債券文書)를 비새는 방에 던져 썩어 없어지도록 방치하니 사람들이 장자라 일컬었다. (709)   양천(陽川) 월촌(月村)에 살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온 집안 식구를 거느리고 영남(嶺南)(경상도(慶尙道)) 진주(晉州)로 내려가 4년 후 1639 기묘(己卯)에 돌아가시어 포천(抱川) 계류(溪流) 마을 선영(先塋)으로 귀장(歸葬)(반장(返葬))하였다. 아들 넷을 두어 장남 헌길(軒吉)은 사마시(司馬試)에 등제하고 음사(蔭仕)로 후릉참봉(厚陵叅奉)이요, 차남은 헌일(軒一)과 헌철(軒哲)과 헌열(軒說)이다. 공은 벼슬하지 않았는데 산계(散階)로 사직(司直)이라고 이른다. 찬사(贊辭)에 이르노니,   상소로서 간흉(奸兇)들을 주살(誅殺)하자 하였는데 기운이 늠름하고 씩씩하였도다.   누가 감히 믿지 않겠는가? 한수재(寒水齋)(권수암(權遂菴))의 추장(推獎)이 있었도다.

도곡이의현찬

 

淸軒柳公澍傳

 

柳澍字應霖號清軒西山自湄五世孫  隆慶戊辰生爲文高選發解有名光海癸丑廢  母論起率鄕人抗疏請斬主其論者其疏曰父子之親君臣之義天經地緯亘萬古無時可墜熄焉則禽獸而已夷狄而已兹者賊臣李偉卿鄭造尹訒等肆其悖惡傅會兇說必欲廢  君母而後已陷  慈殿於不測之域納吾  君於有過之地捃摭之詬辱之是非辱  慈殿也乃辱  殿下也非辱  殿下也乃擧一國歸之禽獸之類也豈不痛哉  殿下只以造訒爲過激然則  殿下以造訒之言爲是耶不然何不斬三賊之頭以慰  慈殿以謝臣民以洩神人之憤乎罪惡昭著國人皆曰可殺而  殿下曲庇之臣等之惑滋甚論思言責之臣畏觸兇鋒莫敢請罪今日三司皆鄭造也人心疑懼正論憤激  殿下何獨惜此三賊而不念倫紀之重不恤  宗社之危乎疏上光海大怒欲殺之有救者只命禁錮十年盖其家錄如此而遂菴權文純公取以表諸墓可垂百世云公家素溫村隣多丏貣投劵漏室任其朽滅有長者稱居陽川月村丙子虜難盡室下嶺南之晉州越四年而歿歸葬抱川溪流村先塋有四子長軒吉自有傳次軒一次軒哲次軒說公未登仕以散階爲司直云贊曰尺疏誅奸氣凜而壯疇敢不信寒水有獎

陶谷李宜顯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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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260  칠송공(곤수)묘지 (七松公(鵾壽)墓誌) 268     편집인 2012/11/28  [653]  
259  교관공(승춘)묘지명 (敎官公(承春)墓誌銘) 267     편집인 2012/11/28  [652]  
 청헌류공주전 (淸軒柳公澍傳) 266     편집인 2012/11/28  [565]  
257  청헌공(주)묘표 (淸軒公(澍)墓表) 265     편집인 2012/11/28  [580]  
256  경기감사제교류공(희량)약사 (京畿監司霽嶠柳公(希亮)略事) 264     편집인 2012/11/28  [659]  
255  참판공(희발)약사 (參判公(希發)略事) 263     편집인 2012/11/28  [510]  
254  판서공(희분)약사 (判書公(希奮)略事) 262     편집인 2012/11/28  [689]  
253  판결사공(희담)약사 (判決事公(希聃)略事) 261     편집인 2012/11/28  [555]  
252  시강원필선오촌류공기문묘갈명 (侍講院弼善梧村柳公起門墓碣銘) 260     편집인 2012/11/28  [520]  
251  필선공(기문)자제묘지 (弼善公(起門)自製墓誌) 259     편집인 2012/11/28  [453]  
250  정암공(습)행장 (靖菴公(隰)行狀) 258     편집인 2012/11/28  [906]  
249  뇌천처사공(호)묘표 (磊川處士公(灝)墓表) 257     편집인 2012/11/28  [1035]  
248  충청병사공(성)약사 (忠淸兵使公(星)略事) 256     편집인 2012/11/28  [463]  
247  휴계공(무)약사 (休溪公(懋)略事) 255     편집인 2012/11/28  [752]  
246  예문검열용문공(흠)약사 (藝文檢閱龍門公흠(欽+心)略事) 254     편집인 2012/11/28  [632]  
245  장령공(심)약사 (掌令公(竹+尋)略事) 253     편집인 2012/11/28  [546]  
244  절초당공(훤)묘갈명 (節初堂公(箮)墓碣銘) 252     편집인 2012/11/28  [681]  
243  전라도도사공(효건)묘표 (全羅道都事公(孝健)墓表) 251     편집인 2012/11/28  [613]  
242  낙봉공(충건)삼세효행전 (樂峰公(忠健)三世孝行傳) 250     편집인 2012/11/28  [678]  
241  증승지공(의남)묘표 (贈承旨公(義男)墓表) 249     편집인 2012/11/28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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