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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낙봉공(충건)삼세효행전 (樂峰公(忠健)三世孝行傳) 250


낙봉공(충건)삼세효행전

樂峰公(忠健)三世孝行傳

 

  류씨(柳氏)로서 문화(文化)를 관적(貫籍)으로 한 자는 실로 고려(高麗) 태사(太師) 차달(車達)의 후예이다. 그 후에 의정(議政) 관(寬)이 우리 조선조(朝鮮朝)에 들어 와서 유명하였으며, 8세를 지내어 주부(主簿) 충건(忠健)과 사어(司禦) 시량(時亮)과 현령(縣令) 송제(松齊) 조(祖) 자손 3세가 다 효행이 있어 충청도(忠清道) 충주(忠州)의 적화리(赤火里)에서 살았다. 금상(今上) 9년 1668 무신(戊申)에 온천(溫泉)에 행차하시다가 도신(道臣)에게 명하여 충신과 효자의 실행이 있는 자는 다 들어 천문(薦聞)하라 하시니 충주(忠州) 유학(幼學) 신희대(辛喜大) 등 50여인이 류씨(柳氏) 삼세(三世)를 함께 본주(本州)에 상신(上申)하였는데 아래와 같다.   『고주부(故主簿) 충건(忠健)은 성효(誠孝)가 출천하여 어려서 부터 자식된 도리(道理)를 극진히하여 신혼정성(晨昏定省)을 반드시 몸소 집행하여 게을리 아니하고 어버이가 질병이 있으면 울부짖으면서 바쁘게 서두르니 이웃 사람들이 다 감탄하였습니다. 36세에 그 모친의 상을 당하여 죽만 마시고 묘려(墓廬)에 살면 (675) 서 조석으로 곡하고 절하여 풍우한서(風雨寒暑)로 폐하지 않더니 그로 인하여 병들어 지쳐도 상복를 벗지 않고 가인(家人)이 약물을 바치면 혹 강계(薑桂)의 자미(滋味)가 있을가 염려하여 한사코 물리쳐 마침내 입에 대지 아니하더니 일년이 못되어서 여막에서 운명하니 인근에서 들은 이가 다 슬퍼하지 않는 이 없었습니다. 그 아들 사어(司禦) 시량(時亮)이 능히 그 부친의 덕행을 닮아 십세에 부친의 상을 만나 애척한 모습과 궤전(饋奠)하는 예의가 한결같이 성인과 다름이 없으니 친족이 다 효자라고 일컬었습니다. 자라서 그 모친을 봉양함에 더욱 그 정성을 다하되 50년을 하루와 같이 하더니 모친이 병들음에 밤에 밖에 나가기도 하고, 설사를 맛보는 등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모친의 기운이 떨어짐에 단지(斷指)하여 피를 먹여서 6년의 명을 연장시켰습니다. 또 누님으로 더불어 우애가 더욱 돈독하여 모친이 돌아가신 후로 섬기기를 어머니 같이 하고, 생질 보기를 친자식 같이 하니 보고 듣는이 다 그 진지함을 칭찬하였습니다. 또 그 아들 송제(松齊)가 조(祖)와 부의 행실을 본받아 무릇 그 행한 바가 고인에게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일찍 그 부친의 등창을 빨아낼새 입술이 또한 헤어짐에 이르러도 더욱 그치지 아니하고 또 작지(斫指)하여 피를 바르고 또한 먹이니 사람들이 다 그 성효(誠孝)의 소감(所感)으로 병이 아마 낳을 것이라고 하였으나 그렇치 못하므로 신리(神理)도 혹 어김이 있지 않은가 의심하였습니다. 그 아우 계제(桂齊)와 회제(檜齊)로 더불어 한집에서 동거공산(同居共產)하여 네것 내것이 없이 지냈습니다.  아! 어느 사람이 부모의 자식이 아니리오마는 그러나 능히 효도하는 이가 적거늘 류송제(柳松齊) 같은 이는 삼세를 연이어 특이한 행실이 있었는데도 아직 정표(旌表)한 은전(恩典)이 없기 때문에 감히 천문(薦聞)합니다.』하였다.   그 전에 현감(縣監) 정경연(鄭慶演)과 서윤(庶尹) 김정현(金鼎鉉)과 유학(幼學) 정(鄭) 이 본고을 원에게 선후로 진백(陳白)하였는데, 이제에 이르러 목사(牧使) 이후하악(李侯河岳)이 사례(謝禮)하여 이르기를 『내 사어(司禦)의 집으로 통가(通家)의 의가 있어 익히 그 사실을 아니 어찌 부로(父老)의 말함을 기다리리요마는 그러나 내가 친한 혐의가 있어 상신(上申)하기가 난처하였다.』하고, 곧 관찰사(觀察使)에게 청하여 아뢰도록하니 관찰사 민공유중(閔公維重)은 인륜을 애호하는 이라. 정치를 함에 한결같이 현숙하고 간특(奸慝)함을 정포(旌褒)하고 징벌하기를 주장(主張)하더니 이르되 『이 충주(忠州)는 나의 선영(先塋)이 계신 고을이기 때문에 류씨(柳氏)의 행실을 들음이 심히 자상하다.』하고 드디어 조정에 알리니, 예조(禮曹)에서 아뢰어 충건(忠健)은 모관(某官), 시량(時亮)은 모관(某官)을 증(贈)하고, 송제(松齊)는 문과(文科)에 올 (676) 라 바야흐로 현령(縣令)인지라. 우(右)와 같이 포서(褒叙)하기를 청하니 상이 계(啓)에 의하여 시행하라 명하시다.   은진(恩津) 송시렬(宋時烈)이 이르노니 십실(十室)의 적은 고을에도 충신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에 들어간 이는 반듯이 그 수레 위에서 공경히 몸을 굽힌다 하거늘 하물며 류주부(柳主簿)는 삼세(三世)를 연이어 효행으로 알려졌는데도 사람들이 이간(離間)하는 말이 없으니 어찌 심히 귀한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천전백금(千錢百金)의 자산이 있어도 능히 일, 이세를 지키는 자가 있던가? 하물며 세상에 드문 선행이랴! 비록 그 가전(家傳)의 연원(淵源)이 있고 근본이 있다 할지라도 또한 어찌 우리 열성조(列聖朝)의 치교(治敎)의 덕화(德化)가 아니겠는가?   또 선유(先儒)의 말씀을 살펴보건대 천성이 선치 않음이 없으되 혹 청탁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능히 다 선치 못하나 그러나 기화(氣化)의 승(勝)한 자가 있고 또한 형화(形化)의 승한 자가 있으니 기화는 천지오행(天地五行)에서 태어남이요, 형화는 부모의 혈기에서 태어남이라, 오행(五行)의 기(氣)는 비록 잘못타고 났을지라도 형화에 품부한 자가 순미(純美)하면 곧 인성이 선하나니 아마도 류씨(柳氏)의 대대로 전한 혈기는 오래 되어도 끊히지 아니함이라. 어찌 독특히 그 가정교훈(家庭敎訓)에 길들인 소양(素養) 뿐이랴! 세상에 선행을 좋아하고 묻힌 사행을 드러내는 이가 없어 미명(美名)으로 그 마을과 그 여문을 이름 짖지 않더니 이제 주상께서 이에 은명(恩命)을 내리시니 그 거룩한 일인져! 류주부(柳主簿)는 일찍 우계(牛溪) 성문간공(成文簡公)(성(成) 혼(渾))에게서 수학하였다고 이른다.

우암송시렬기

 

樂峰柳公忠健三世孝行傳

 

柳氏籍文化者實高麗太師車達之後其後議政寬入我朝有名歷八世主簿忠健司禦時亮縣令松齊祖子孫三世皆有孝行居忠清道忠州之赤火里今  上九年戊申幸溫泉冒臣有忠臣孝子實行者皆擧以聞忠州幼學辛喜大等五十餘人以柳氏三世共申于本州曰故主簿忠健誠孝出天自幼少時極盡子道晨昏定省必躬執不懈親有疾病號泣奔遑隣竝感歎年三十六其母死啜粥居廬朝夕哭拜不以風雨寒暑而廢因致羸疾而猶不脫絰帶家人進以藥物忠健慮有薑桂之滋以死斥去終不近口未及一朞終於墓下廬幕遠近聞者莫不傷悼焉其子司禦時亮克肖其德十歲遭父喪哀慽之容饋奠之禮一如成人親族皆以孝兒稱之及長奉養其母尤盡其誠五十年如一日母寢疾露禱嘗泄無所不至母氣旣絶時亮斷指進血遂延六年之命又與姊友愛彌篤自其母歿後事之如母視諸姪如己子觀 (674) 聽者皆稱其極摯焉其子松齊習服祖父行凡其孝行無愧古人嘗吮其父疽至於唇吻亦爛瘡而愈不已又出指血塗之亦以呑下人皆意其誠孝所感庶幾良而已不果焉不能無疑於神理之或舛也與其弟桂齊檜齊同居共爨無有私藏嗚呼人孰非父母之子然而能孝者鮮矣如柳松齊仍三世有特異之行而尚無旌異之典故敢此薦聞焉先是縣監鄭慶演庶尹金鼎鉉幼學鄭先後陳白于州至是牧使李侯河岳謝曰吾與司禦家有通家誼熟知其事實何待父老之言然吾有親嫌難於申狀矣遂徑詣觀察使以吿觀察使閔公維重愛好人倫爲政一主於旌別淑慝謂曰忠州是吾丘墓之鄕故聞柳氏家甚稔矣遂以轉聞于朝禮曹議啓請  贈忠健某官時亮某官松齊登文科方爲縣令請右叙 上命依所啓施行恩津宋時烈曰十室之邑一有忠信之人入焉者必軾其車况柳主簿仍三世以孝行聞而人無間言豈非可貴之甚乎人有千錢之產十金之資有能及一二世者耶而况於稀世之至行乎雖其家傳者有源有本而亦豈非我 列聖治敎之所化乎又按先儒說性無不善而或有清濁之異故人不能皆善然有氣化勝者亦有形化勝者氣化天地之五行形化父母之氣也五行之氣雖駁而稟於形化者純美則人性善豈柳氏相傳之氣久而不餒而豈獨其擩染之素而已耶世無好善闡幽者不以美名名其里與閭今 主上乃有恩命其聖矣哉柳主簿嘗從牛溪成文簡公受學云

尤菴宋時烈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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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260  칠송공(곤수)묘지 (七松公(鵾壽)墓誌) 268     편집인 2012/11/28  [654]  
259  교관공(승춘)묘지명 (敎官公(承春)墓誌銘) 267     편집인 2012/11/28  [652]  
258  청헌류공주전 (淸軒柳公澍傳) 266     편집인 2012/11/28  [566]  
257  청헌공(주)묘표 (淸軒公(澍)墓表) 265     편집인 2012/11/28  [581]  
256  경기감사제교류공(희량)약사 (京畿監司霽嶠柳公(希亮)略事) 264     편집인 2012/11/28  [659]  
255  참판공(희발)약사 (參判公(希發)略事) 263     편집인 2012/11/28  [511]  
254  판서공(희분)약사 (判書公(希奮)略事) 262     편집인 2012/11/28  [689]  
253  판결사공(희담)약사 (判決事公(希聃)略事) 261     편집인 2012/11/28  [555]  
252  시강원필선오촌류공기문묘갈명 (侍講院弼善梧村柳公起門墓碣銘) 260     편집인 2012/11/28  [521]  
251  필선공(기문)자제묘지 (弼善公(起門)自製墓誌) 259     편집인 2012/11/28  [453]  
250  정암공(습)행장 (靖菴公(隰)行狀) 258     편집인 2012/11/28  [907]  
249  뇌천처사공(호)묘표 (磊川處士公(灝)墓表) 257     편집인 2012/11/28  [1035]  
248  충청병사공(성)약사 (忠淸兵使公(星)略事) 256     편집인 2012/11/28  [464]  
247  휴계공(무)약사 (休溪公(懋)略事) 255     편집인 2012/11/28  [752]  
246  예문검열용문공(흠)약사 (藝文檢閱龍門公흠(欽+心)略事) 254     편집인 2012/11/28  [632]  
245  장령공(심)약사 (掌令公(竹+尋)略事) 253     편집인 2012/11/28  [546]  
244  절초당공(훤)묘갈명 (節初堂公(箮)墓碣銘) 252     편집인 2012/11/28  [681]  
243  전라도도사공(효건)묘표 (全羅道都事公(孝健)墓表) 251     편집인 2012/11/28  [614]  
 낙봉공(충건)삼세효행전 (樂峰公(忠健)三世孝行傳) 250     편집인 2012/11/28  [678]  
241  증승지공(의남)묘표 (贈承旨公(義男)墓表) 249     편집인 2012/11/28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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